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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이씨(洪州李氏). 9세 이기종(李起宗). 연경궁 제학(延慶宮 提學). 문강공 이서의 '자마풍간(子馬諷諫)

by holyspirit-lee 2024. 12. 31.

 홍주이 씨(洪州李氏) 9세 이기종(李起宗)

연경궁 제학(延慶宮 提學). 연경궁은 고려의 왕궁. 제학은 고려 때 정 3품 벼슬. 이기종은 중시조로, 이때부터 집안이 홍주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이때부터 묘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유교식으로 정비되어 위의 9대는 후에 가묘로 만들었다고 한다. 


홍주 이씨의 홍주 토성화는 이유성의 9 세손인 이기종(李起宗)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기종은 고려 충열왕때 등과 하였으나,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관직을 버리고 홍주 수란동(현 홍동면 수란리)에 정착 홍주 이 씨의 계보를 정리하여 가계를 세우며 입향조가 된다.

 

그의 묘가 홍동면 수란리에서 11km 떨어진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 선경에 있다. 따라서 현재 홍동면 수란리, 금당리 일대 홍주 이씨가 장손(금동파)이다.

홍주이씨 9세 이기종 시조공묘소

이기종은 장남 이성(晟), 차남 이서(舒), 삼남 이표(表) 등 아들 셋을 둬 후손을 퍼뜨리며 홍주 이씨의 파를 형성하게 된다.

기종의 둘째 아들 이서(1333~1410)는 홍성의 토성들을 기록한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의 홍주 이 씨 인물조에 유일하게 기록될 정도로 홍주 이 씨를 대표하는 인물로 홍주 이씨의 70% 정도가 이서의 후손들이다. 

 

이서의 자는 맹양, 호는 송강, 시호는 문간이다. 이성계를 도와 중국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는 등 조선왕조 건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에 녹훈되었고 안평부원군에 봉해졌다.

❏ 연경궁 제학(延慶宮 提學)

연경궁 제학은 고려시대 연경궁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강론하는 임무를 맡은 관직이다. 연경궁은 고려시대 개성에 위치한 궁궐로, 현종 13년(1022년)에 왕비 김 씨의 아버지 김은부가 연경궁주에 봉해지면서 연경궁이라 불리게 되었고, 덕종 2년(1032년)에 궁궐로 승격되었다.

연경궁제학

연경궁에는 학문을 연구하고 강론하는 장소가 마련되었고,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위해 연경궁 제학이라는 관직이 설치되었다.

연경궁 제학은 문관으로서 3품 이상의 벼슬을 가진 사람이 임명되었고, 학문에 능통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 선발되었다.

 

연경궁 제학의 주요 업무는 다음과 같다.

- 연경궁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강론
-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
- 연경궁에 소장된 도서를 관리
- 연경궁에서 진행되는 학술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

 

연경궁 제학은 고려시대 학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연경궁 제학을 역임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충, 이곡, 김부식 등이 있다.

최충은 고려시대 문신으로, 연경궁 제학을 역임하면서 유학을 연구하고 강론했다. 최충은 성리학을 고려에 처음 소개한 인물로, 고려시대 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주소 :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